지난 20년간 여성들의 일상복과 운동복을 대표하는 아이템은 단연 레깅스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레깅스는 단순한 운동복의 영역을 넘어 일상 속 어디에서나 활용되는 범용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밀착감 있는 디자인은 활동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몸매 라인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옷이 되었다. 요가, 필라테스, 피트니스 문화가 확산되면서 레깅스는 기능성과 미적 요소를 동시에 갖춘 필수 아이템으로 부상했고, 헐리우드 스타들과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공항 패션이나 데일리룩으로 레깅스를 착용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룰루레몬 등 스포츠 브랜드들은 경쟁적으로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레깅스를 내놓으며 시장을 확대했고, 애슬레저(athleisure) 트렌드가 한창일 때는 레깅스가 사실상 ‘패션과 운동의 경계를 허문 혁신적 아이템’으로까지 평가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레깅스는 한계에 부딪혔다. 몸매를 드러내는 특성상 체형의 제약이 크게 작용했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특히 새로운 세대가 패션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레깅스의 절대적 인기는 점차 퇴색하고 있다.
Z세대가 주도하는 오버핏 바지 열풍
최근 패션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레깅스를 대신해 오버핏 바지가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년 넘게 인기를 끈 레깅스가 오버핏 바지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며, 최근 운동하는 여성들이 1990년대 댄서나 그룹 TLC처럼 짧은 상의에 바스락거리는 패러슈트 팬츠를 입는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바로 Z세대가 있다. 1995년 이후 태어난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패션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밀레니얼 세대가 ‘몸매 강조형’ 패션을 선호했던 것과 달리, Z세대는 개성과 자기 표현을 더 중시한다. 몸에 밀착되는 레깅스는 신체 노출과 부담감을 동반하는 반면, 헐렁한 오버핏 바지는 편안하면서도 자유로운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 선호의 차원을 넘어 세대적 가치관의 반영이다. 실제로 SNS에서 확산되는 패션 콘텐츠를 보면, 레깅스보다 오버핏 조거 팬츠, 패러슈트 팬츠, 와이드 데님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특히 크롭탑과 오버핏 바지를 매치하는 방식은 Z세대가 즐겨 활용하는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운동복 시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두드러진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거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여성들이 더 이상 레깅스만 입지 않고, 와이드핏 팬츠를 운동복으로 선택하는 모습이 보편화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도 이런 수요를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아디다스와 나이키는 여전히 레깅스를 판매하지만, 최근에는 와이드핏 조거와 릴랙스 팬츠를 신제품 라인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결국 오버핏 바지 열풍은 단순한 복고풍 유행이 아니라, 세대 교체가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패션의 가치관 변화와 미래 전망
레깅스에서 오버핏 바지로의 흐름은 단순히 옷의 형태만 바뀐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신체 긍정주의(Body Positivity), 다양성 존중,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레깅스는 몸매를 강조하는 특성상 체형이 드러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었다. 반면 오버핏 바지는 체형을 감춰주며 누구나 자유롭게 입을 수 있어 보다 포용적인 패션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자”는 신체 긍정주의 운동과 맞물려 Z세대의 강한 지지를 받는다. 또한 패션과 운동복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헐렁한 바지가 주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은 일상뿐 아니라 운동 환경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선보이는 오버핏 스타일은 글로벌 트렌드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으며, 브랜드들은 이에 맞춰 제품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물론 레깅스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요가, 필라테스, 홈트레이닝 등 특정 활동에서는 여전히 필수 아이템이자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누구나 즐기는 일상 패션’이라는 지위는 오버핏 바지로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 패션 시장은 Z세대가 보여주는 자유로운 감각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며, 오버핏 바지는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여성 패션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높다. 레깅스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패션 코드가 부상하는 지금, 우리는 패션이 단순히 외형적 아름다움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 세대 정체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 현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