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는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남겼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구조에 나섰던 소방관들은 생생한 참사 장면과 다수 사상자를 목격하며 깊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관 사례가 보도되면서, 소방관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 글에서는 참사 이후 소방관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우울증, 극단 선택의 원인, 그리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책을 심층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트라우마: 현장에서 각인된 기억
이태원 참사는 좁은 골목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압사 사고였습니다. 구조를 담당한 소방관들은 심정지 환자가 줄지어 누워 있는 모습, 울부짖는 가족과 시민, 극도의 혼란 상태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뇌에 강하게 각인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PTSD 증상은 반복되는 악몽, 사건 재현, 과도한 경계심, 감정 마비 등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내가 더 빨리 구조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죄책감은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으로 이어져 우울증을 심화시킵니다. 소방관 직업 특성상 참사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므로 트라우마가 누적되고, 업무 스트레스와 결합되면서 회복이 어려워집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강한 소방관’ 이미지가 자기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어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극단 선택: 우울증의 심화 과정
최근 보도된 사례에서 한 소방관은 이태원 참사 이후 심한 불면증과 불안, 우울증을 겪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단순한 개인적 취약성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과 직무 환경이 결합되어 발생합니다. 첫째, 소방관은 24시간 대기와 교대 근무로 신체적 피로가 크며, 사건 이후 충분한 회복 시간을 갖기 어렵습니다. 둘째,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업무 적합성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불안이 있어 치료 접근성이 낮습니다. 셋째, 동료들 사이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약하다’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문화적 장벽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트라우마가 해소되지 않고 우울증이 심화되면 자살 위험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특히, 구조 활동에서 경험한 무력감과 죄책감은 극단 선택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사고를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대응: 제도와 사회적 지원의 과제
소방관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입니다. 첫째, 국가 차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검진을 의무화하고, 전문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비밀 보장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소방관이 큰 사건에 투입된 뒤 반드시 심리 평가와 상담을 받도록 제도화하고 있으며, 치료 기록은 인사 평가에 반영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조직 내부에 ‘동료 지원 프로그램(peer support program)’을 확산시켜 같은 경험을 한 동료들 간에 공감과 지지를 주고받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언론과 사회는 소방관을 단순히 ‘영웅’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취약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넷째, 소방관 가족에게도 상담과 교육을 제공해 2차 트라우마를 예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구조자 보호는 시민 보호와 직결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반드시 제도적 대응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소방관들의 우울증과 극단 선택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트라우마와 죄책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 조직 내부의 문화 개선, 사회적 공감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겪는 소방관들이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느끼도록 돕는 것입니다.
※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상담전화 1577-0199 등 전문 기관에 즉시 연락하세요. 위기 상황에서는 112, 119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